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과달카날 해전 (문단 편집) ==== 사우스다코타의 고난 ==== [[파일:1024px-Naval_Battle_of_Guadalcanal,_November_14-15,_1942.png]] ||1 : 미국 구축함 격침 2 : 아야나미 격침 3 : 키리시마 격침 A : 미 전함 세력의 진로 실선: 워싱턴 쇄선: 사우스다코타 파선: 그윈, 벤험의 퇴각로 B : 아야나미 C : 센다이 그룹 D : 나가라 그룹 E : 키리시마, 아타고, 타카오|| 아야나미가 격침될 즈음에, 사우스다코타에서 정전이 발생한다. 사우스다코타의 엔진실, 즉 집중방어구획 안에 있던 배전반에서 갑작스례 차단기가 내려갔고, 전력이 차단되자 전력을 많이 차지하는 장비들이 하나 하나 다운되었다. 레이더, 사격통제 시스템, 탄약고에서 포반까지 탄을 올려주는 양탄기, 포탑을 회전시켜주는 모터, 통신장비, 그리고 함내는 물론 함 밖을 비추는 서치라이트나 발광신호용 조명까지. 미군의 전함은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부터 상당히 많은 설비가 전자기기로 대체되거나 자동화되었는데, 발전기가 꺼진 상황에서는 독이 되었다. 하지만 유압식으로 움직이는 키와 오로지 기계만으로 움직이는 엔진은 살아있었고, 미군 함선에 함내 연락수단으로 무전지식 전화기(sound powered telephone)가 진주만 공습 직전부터 도입되었기 때문에 지휘가 불가능한 사태까지 다다르진 않았다. 그 덕분에 사우스다코타는 완전히 장님이 된 상황에서도 위험하게나마 야간항해를 할 수 있었다. 개치 함장이 인격적으로 행동해왔기에 함내의 수병이 정전의 원인이었던, 안전수칙 미준수로 인한 합선을 즉시 보고해왔다. 하지만 엔진실의 배전반을 제대로 복구하려면 고압의 전기를 생산하던 엔진실의 발전기를 멈춰야 했고, 그러려면 사우스다코타가 멈춰서야 했다. 개치 함장은 본인의 커리어에 자신감이 부족했고, 어뢰가 오가는 교전 수역에서 전함을 멈춰세우는 위험 부담도 너무 컸다. 그래서 배를 멈추지 않으면서 배전반을 수리하라고 지시하고는, 어둠 속에서 워싱턴을 따라 항해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수병들과 CPO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배전반의 차단기는 다음날 새벽까지 복구되지 않았다. 밤 11시 35분이 되자 미 전함들은 미 구축함들이 불타오르는 수역에 도착했다. 리 제독과 데이비스 함장은 능숙한 조함으로 전함 워싱턴을 움직여 불타오르는 구축함을 오른편에 두도록 좌선회했고, 불길과 섬 사이를 항해하며 워싱턴을 그림자 속으로 숨긴다. 반면 뒤쫒아오던 사우스다코타는 정전으로 레이더를 쓸 수 없고 견시의 음성경고에 의존하며 항해하던 상황에서, 불타오르는 구축함들로부터 가까스로 빠져나오던 벤험과 충돌할 뻔했다. 사우스다코타는 충돌시의 암묵적인 규칙에 따라 우현으로 선회해서 충돌을 회피하였으나, 그 방향은 워싱턴이 갔던 방향과 정 반대였다. 결국 사우스다코타는 불길을 등지고 항해하게 된다. 그 결과, 곤도 함대의 키리시마의 견시는 아야나미를 격침시켰다는 미국의 잔존 중순양함(?)의 실루엣을 쉽게 발견한다. 키리시마, 아타고, 타카오는 ''''손상을 입은 것인지 순양함 치고는 느리게 움직이던 적함''''의 침로를 쫒아 북서쪽으로 변침하고는, 좌현으로 전 포문을 전개한 뒤, 키리시마와 아타고의 서치라이트를 신호로 밤 11시 40분에 뇌격 및 포격을 개시했다. 주변의 일본의 구축함들도 그 뒤를 따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